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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라니 조회 9회 작성일 2020-08-01 11:16: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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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조선시대 남자도 귀고리를 했다

- 조선의 선비들, 피어싱을 하다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등장하는 심상치 않은 기록은 남자들의 귀고리 착용문화에 관한 내용이다.
유교이념으로 무장한 사대부가의 자제들은 물론이요 왕자들까지 진주 귀고리를 했다는데, 언제부터 남자들이 귀고리를 했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남성의 귀고리 문화를 추적해 귀고리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우리 문화의 국제성과 역동성을 확인한다.

- 은평구에서 발굴된 귀고리의 주인공을 찾아서
5천여 기의 조선시대 무덤이 출토된 서울 은평구 뉴타운 발굴 현장. 발굴 도면 12호 무덤에서 수습한 유물에는 귀고리 한 쌍이 들어있었다. 귀고리 주인의 성별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함께 묻혀있던 물고기 모양의 장신구와 백자술병인데 놀랍게도 귀고리의 주인은 조선시대 관리를 지낸 남성이었다.

- 국내 남성 피어싱 1호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남성들의 귀고리 착용 문화는 언제 시작된 걸까?
당나라에 파견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외교관의 모습을 그린 왕회도 등의 곳곳에서 귀고리를 착용한 남성들의 모습이 발견된다. 현재까지 성별이 확인된 국내 남성 귀고리 1호 착용자는 김포 양촌리에서 발굴된 3세기 초의 금귀고리의 주인이다. 1,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남성 귀고리문화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밝힌다.

- 남성 귀고리의 크기, 권위와 신분의 상징
중종실록에 실린 양평군 사칭사건. 큰 진주귀고리를 달았던 귓불의 구멍으로 양평군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귀에 뚫린 큰 구멍이 왕실의 핏줄을 증명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귀하신 몸의 귓불에 어떻게 구멍을 뚫어 귀고리를 달았던 것일까?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어원커족 마을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 사라진 남성 귀고리 문화에 담긴 놀라운 비밀
남자들의 귀에서 귀고리가 사라진 것은 17세기이다.
1,5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남자들의 귀고리 문화가 갑자기 사라진 까닭은 무엇일까? 중국 한족으로 위장해 기생집을 찾아간 조선 역관의 에피소드, 흉노와 선비족 등 북방 유목민의 남성 귀고리 문화와 사라진 조선시대 남성 귀고리 문화를 추적하여 남성 귀고리 문화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를 밝힌다.

신역사스페셜 59회 – 조선시대 남자도 귀고리를 했다 (2011.2.17.방송)
http://history.kbs.co.kr/
Suhxehu27 Hwyxts : 여자야 귀골이 하면 예쁘니깐 하겠지만
남자가 귀골이를 왜하지 근데 무슨 이상한 조사 센터에서 남자가 귀골이하면 몇프로 더 잘생겨보인다고
하긴 하더라 ㅋㅋㅋㅋㅋ
blabla : 정확히는 중국 보다 약했고 중국에 굴복할수밖에 없었기에 전통을 져버리고 살길을 택한거지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 중국은 화장하고 귀뚫은 남돌에 환호한다.
blabla : 왜 신라때 화랑도 있고 요즘도 귀고리 하는 남자들있잖아 옛날이라고 다를까 심지어 예수있을때 동성애도 만연했는데 뭐
JS white : 보청기 광고 극혐...
뚜끼쥬러뷰 : 귀걸이는 신라,고려,백제 남자들도 했죠 왕은 물론이고 귀족들도 함
메로메로메로나 : 진짜 신기하다
이영재 : 역사 조금만 알아도 지금 입는 여성들의 복장과 악세사리는 과거 남자에서부터 시작했다는것을 알수있고 또한 증명된지 오래됨.
스타킹, 치마, 귀걸이, 코걸이, 햇빛가리는 창넓은 모자, 구두, 파마머리, 군 우비 자켓, 코트 ㅅㅂ 지금와서는 역겹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일반적인 남자들의 패션..
나즈막한모양 : 계속 보니 방물모양 귀걸이 이뻐보여서 나도 해보고 싶어지네 ㅎ
한국은 예로부터 꾸미기를 좋아했나보네ㅋㅋㅋ
BBrave비브래브행복항구찬양그림 : 세종대왕도 귀거리 했겠지
왕귀거리
BBrave비브래브행복항구찬양그림 : 지금은 과시용으로 귀거리대신 개 두마리씩 목줄로 산책시킨다

KBS 역사스페셜 – 독락당 어서각은 왜 굳게 닫혀 있었나

- 조선시대 서자, 실상을 엿보다
조선시대 주리 성리학을 주창한 회재 이언적에게는 이응인과 이전인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이전인은 이언적과 후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고 이응인은 5촌 조카로 이언적이 양자로 들인 아들이다.
양자 이응인은 가문의 제사를 맡은 적자가 됐으나 이전인은 뛰어난학행과 효심에도 불구하고 회재의 대를 잇지 못했다. 서자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서자들의 손발을 묶었던 태종은 고려시대 만연했던 병축(아내를 여럿 두는 풍습)을 금지하고 적첩을 철저히 구분했다.
서자들의 과거시험을 제한하고 관직등용도 막았다. 이는 양반가 자제들에게 매우 가혹한 조치였다. 과거를 보지 못하고 관직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양반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 허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선조 16년에 일어난 니탕개란. 당시 병조판서였던 율곡 이이는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전훈을 세우거나 군량미를 내면 서얼에게 벼슬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서얼차대에 집착했던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치기는 했으나 이것은 서얼허통의
물꼬가 됐다. 바로 이 때 이전인의 아들인 이준도 납속허통을 받아 자신과 후손들의 과거길을 열었다.
서얼들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끼리 마음을 합하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그 중의 하나가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였는데 특히 새로운 왕이 즉위하여 왕이 자신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힘을 모으고자 할 때 주로 상소를 올렸다.
왕은 서얼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은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숙종을 거쳐 영정조 시대에 서얼허통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 서얼들의 도전, 200년에 걸친 향전
조선시대 왕과 사대부는 끊임없이 대립했고 서자 문제도 그 중 하나였다.
조선 초 태종은 본인의 뜻으로 서얼차대를 본격화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임금은 서자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허용하고자 하고 사대부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세력을 합해 더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영남 남인들은 노론에 밀려 중앙권력에서 밀리게 되자 지역 특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똘똘 뭉치면서 서얼들을 배척했다.
서자 신분으로 부사직까지 역임한 이준은 관직에 관한 한 여한이 없었다.
그러나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서얼차대가 유독 심한 지역 양반들이 서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면서 서얼들의 진입을 막았던 것이다. 조정에서의 허통은 이루어졌지만 삶의 기반인 지역사회에서는 거부당한 이준은 71세의 나이에 다시 붓을 들고 청원서를 쓴다. 그러나 그의 절절한 호소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옥산서원에서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서얼과 지방 사족과의 장기간의 향전이 벌어졌다. 1884년 서얼들의 승리로 서얼소통이 되었고 이러한 옥산서원의 서얼소통은 당시 영남의 서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역사스페셜 54회–독락당 어서각은 왜 굳게 닫혀 있었나. 조선 서자들의 500년 도전사 (2010.12.16.방송)

http://history.kbs.co.kr/
y eypark : 조선이씨 왕들도 다 바람펴서 본처왕비가 아닌 첩들( 무수리.빈.궁.등) 에게서 애들을 막 싸질르고 못된짓하고 다녔죠.
y eypark : 저렇게 차별할거면 왜 애를 낳았고 피임도 안했지?

피임교육은 전혀 안받고 그냥 아무여자를 건드리고 첩질해서 애를 막 싸질르고 나몰라라하고 다니라고 교육 받았나보죠?
Suhxehu27 Hwyxts : 학교에서 역사책 보고 셤보는것보다
KBS 역사 관련 방송 싹다 보는게 나을듯 볼때마다 리스펙
SK Lee : 고려는 호족이 지배하는 지방분권제에 가까웠는데 조선시대는 중앙집권제라 지방의 권한이 없으니 상업등이 발전 할 수가 없었음. 농사를 중심으로 하면 신분제가 가장 심해짐...일본은 영주제(지방자치)라 상업괴 교류가 발전할수가 있었음...
자유소년 : 마크 피터슨 교수님 한국말 엄청 잘하시네.ㅎㄷㄷ
독일육군 : 세상에 과거에 급제하고 관리까지 지낸 사람이 고향에서는 왕따를 당하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
독일육군 : 정말 조선은 쓰레기 국가다. 내가 이런 나라의 후손이라니......
KRIS KIM : 참 이상한 나라야 이나라..
MYOUNG SU CHONG : 율모차내가조와하는!대마초있다.웃기지마라내앞에서전유럽에서는대마초을!마약을로생각도않하는되?이나라많유명하겞금지하는가그리고!술또한그들에이름으로많드러놓고마시는되.이제무엇가룸깊히오는가이간들아너희들은나겞욕먹으면재미있나그러타나밎쳐지이제않는가 ?the!I.m!gaechgy!sowhaith! know!doyounoaithe.
James Lee : 여기 나오신 피터슨 교수님의 '우물밖 개구리' 채널 많이 가입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F6ZmKsxp2-Dxhq99hzkIAg

역사스페셜 – 정감록, 조선의 운명을 말하다

- 조선의 운명은 다했다
‘조선의 운명이 다하고 정씨가 새 도읍지를 세울 것’,즉 이씨 왕조가 운명을 다하고 새로운 정씨 왕조가 생겨난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 예언서인 정감록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크게 성행하였다. 계룡산 연천봉 정상 바위에는 ‘방백마각 구혹화생’이 새겨져 있다.
이 글자를 풀이하면‘사백팔이 국이’가 되는데, '482(년) 국이' 즉 482년‘나라가 바뀐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글자들은 조선의 멸망을 예언하는 참언으로 여겨졌고 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민중들과 함께한 정감록
저자도 연대도 가늠할 수 없는 정감록, 그러나 조선왕조의 공식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반하는 지배이념을 담은 조선조 최고의 금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은 필사본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렇게 수십 여종의 정감록이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당시의 현실과 민중들의 생각이 녹아들 수 밖에 없었다.

- 절망하던 민중, 예언의 땅으로 향하다
경주 영주시 풍기읍은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 중 한 곳이다. 이 곳에는 오직 정감록만 믿고 내려온 황해도 출신의 할아버지가 있다.

"제가 11살에 그 책(정감록)을 봤거든요. 그래서 풍기에 젖어 있었어요. 과연 풍기라는 곳이 어디냐? 옛날에 풍기라고 하면 지금 미국보다 더 멀게 생각됐을 거예요. 그 때부터 과연 풍기라는 곳이 어딘가,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촌 윤정대 할아버지 -

정감록에는 제작진이 취재한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포함하여 난을 피해 안전한 열 곳을 예언하고 있다. 이른바 십승지다. 영, 정조 시대 흉년으로 인한 기근과 돌림병 그리고 무기력한 정부라는 절망스런 현실에 놓인 민중들은 정감록에서 희망을 얻었던 것이다.

- 평등한 사회를 향한 민중들의 끊임없는 갈망
순조 11년(1811년) 12월 홍경래는 여러 가지 사회모순에 대해 반발해 왕조를 뒤엎고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홍경래의 난’을 일으켰다.
동학은 인본주의를 기반으로‘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기본이념 아래 인간 평등과 사회 개혁을 주장하여 변화를 갈망했던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부정하는 혁명적 성격을 지닌 동학농민 운동도 홍경래의 난과 마찬가지로 정감록이 하나의 사상체계인 봉기이다.

- 끝나지 않은 꿈, 새로운 시대를 꿈꾸다
정감록은 하나의 정치적 예언서임과 동시에 밝은 미래를 희망하는 기대의 표현이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세계, 그리하여 차별과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등 정감록은 현실을 부정했지만 현실로부터 도망가지 않았던 민중들의 책이었다.

신역사스페셜 63회 정감록, 조선의 운명을 말하다 (2011.3.31. 방송)
http://history.kbs.co.kr/
VK LLps : 양쯔강 삼협댐의 댐 브레이크 시뮬레이션 시연
주요 도시의 재해 상황 추정 (중국어 및 영어로 CC 자막이있는 이중 언어 버전)

김득철 : 유구읍 화월리 이군요..그동네 인민군이 산에 가리워서 동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다고 하던데....
ᄑ풋프풋사랑 : 동학은 같이 공부하자는 그러닌까 진짜 자기를 깨닫자는 최상의 바람 운동 이지요 ....~~~.. 깨달으면 불생 불멸을 믿었던거 !!!!!~ ~
ᄑ풋프풋사랑 : 십승지란 마음을비우고 일선(仙)심이 합일천지 건강 장수 명안 명심(明心))을 갖고 즐거이살수있는자리를 일 컬 음 !!!!!~ 그런곳이 너무 많다 !!!!!~~~~~ 신비롭게생각하지마시길 ~~~~
ᄑ풋프풋사랑 : 정감록은 그러닌까 예측를해 국민들의 정신을 새롭게하기위한 신인 예정서로써 진짜 가짜 감록 권선일뿐이지 믿어도바보 노력을않해도 바보 뒤돌아보세요 뒤를보면 앞을알듯이 꼭 맞는건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 노력서 인 것이다 홀룡하지 마셨음 !!!!~~~ 주요한거는 자기마음이 모든거를만든다는사실을 잊지마시고 마음을 닦으시길 ~~~~~~♡ 정감록의 비 결 종결을 나타내 보임 ~...~
신현직 : 정감록 잘 보았습니다
ᄑ풋프풋사랑 : 운명은 고정된게아닙니다 지혜는 모든운명을바꿀수있습니다 이거이 현자 정법 입니다 믿지도말고 그렇다고 너무 나태하지도마옵소서 깨어노력하면 모든게다 미래를 다 개척해나아갈수있는것입니다 ...~ ((((허긴 성자가있을땐 유토피아좋은데 없으면 또 귱휼히 돌아간다는거 이거 큰 화두가될뿐입니다 그래서 많이 현성이 많이 나타나길 바램이 최상의 고민 바람 희망 시대의 발원이짐 요 ....)))))....
그냥 지시받아 갖다자필준비하다는거가원형 : 정도전일파 후손이 관계된것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정여립 정몽주 등등
그냥 지시받아 갖다자필준비하다는거가원형 : 조선은 유학자들이 남의나라 인물하나를 내세워 기득권유지하기위해 발악헌 것이며
결국 나라망하게 만들었다
좌빨도 돼지내세워 하는 짓거리가 똑같다.
james cameron : 정감록은 중국명왕조와짜고 자기조국고려에반역하고탄생한 조선을,마치하늘이 그렇게만들었다는듯 포장하고 한반도백성들을 헷갈리게만드느라만든 삐라같은 구라질쪼가리에 불과한것이오......지금은 그런유언비어는 국민들에게 먹히지도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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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네탄핵도 중국이익과연결된것이지만...박근탄핵은 사진까지있고.동영상까지있어서 박그네가 빼도박도못하고...찍소리도못하고....도리어멍청하게 40년인연어쩌구 저쩌구................................이런멍청한년첨봤음.................오죽했음 국부박대통령이 제일아꼈던부하
전두환 전대통령까지 회고록내어 박.최 두년놈 인증까지해주셨겠냐?..................................................................난또 간통죄 왜없애나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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